삼국문화 요약

삼국은 위, 촉, 오 세 나라를 가리킨다.

위나라는 조위라고도 하는데, 220년 조비가 자신을 황제로 칭하고 낙양을 수도로 정했으며, 265년 사마염 이 위나라를 대체하여 진나라를 건립했다.

촉나라는 한을 국호로 하며 역사에서는 촉한이라 불렀는데, 221년 유비를 황제로 칭하고 성도를 수도로 정했으며, 263년 조위에 의해 멸망되었다.

오나라는 손오라고도 하는데, 222년 손권이 나라를 건립하고 229년 황제가 되었으며, 건업(오늘의 강소 남경)을 수도로 정했다. 280년 서진에 의해 멸망되었다.

  • 기원 184년
    동한 영제 중평 원년
    황건족의 난
    97년
    기원 280년
    서진 무제 태강 원년
    서진이 오나라를 멸망시킴
  • 기원 189년
    헌제 즉위
    영제 사망
    92년
    기원 280년
    서진 무제 태강 원년
    서진이 오나라를 멸망시킴
  • 기원 220년
    위나라 건립
    조비 한나라 대체
    61년
    기원 280년 서진
    서진 무제 태강 원년
    서진이 오나라를 멸망시킴
삼국지도
유비
촉한(성도를 수도로 정함)
기원 221-263
조비
조위(낙양을 수도로 정함)
기원 220-265
손권
손오(건업을 수도로 정함)
기원 229-280
성도 무후사 소개
성도 무후사는 유비), 제갈량 등 촉한의 영웅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촉한 소열제 장무 원년(221년), 유비가 혜릉을 수건하면서 한 소열묘도 함께 수건했다. 기원 500년 전후 남북조 시기, 무후사는 성도 “소성”에서 혜릉, 한 소열묘 옆으로 옮겨졌으며 이는 명조까지 이어졌다. 명 홍무 23년(1390년) 명 촉헌왕 주춘이 무후사 에 와서 참배를 하면서 “군신은 하나다”라는 이유로 혜릉, 한 소열묘, 무후사를 일체화 했는데 백성들 마음 속에서 제갈량의 영향이 유비를 초월했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습관적으로 “무후사” 라고 불렀다. 명조 말 무후사는 전쟁의 불길 속에 훼손되었고, 청조 강희 10년(1671년)에 이르러 고적의 기초 위에 무후사가 재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1961년 무후사는 국무원으로부터 전국 제1기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4년에는 박물관이 설립되었으며, 1997년에는 삼의묘 전체를 무후사로 옮겼다. 2003년 성도 남교공원과 무후사가 합병되었고, 2004년10월 금리가 정식으로 대외에 개방되었으며, 2008년 무후사 가 국가1급박물관으로 지정되었고, 2009년 1월 금리 2기가 개방되었다. 무후사는 현재 부지면적이 15만제곱미터(230무)이며, 삼국문화유적보호구, 삼국문화체험구(즉 서구, 원 남교공원)와 금리 민속구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에서 유일한 군신합제사묘와 가장 유명한 제갈량, 유비 및 촉한 영웅 기념지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삼국유적박물관으로서 무후사는 “삼국 성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연평균 약 1000만명의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무후사 대청의 신구 대조